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문단 편집) == 구성 == ||<-3> 공청단의 주요 인물(역대 공청단 제1서기) || || 이름 || 중국어 이름([[한자]]) || 중국 공청단의 제1서기로 재직한 기간 || || [[후야오방]] || 중국어 정체: 胡耀邦 || 1953년 07월 ~ 1978년 09월 || || 한잉 || 중국어 간체: 韩英 || 1978년 10월 ~ 1982년 11월 || || 왕자오궈 || 중국어 간체: 王兆国 || 1982년 12월 ~ 1984년 12월 || || '''[[후진타오]]''' || 중국어 간체: 胡锦涛 || 1984년 12월 ~ 1985년 11월 || || 쑹더푸 || 중국어 정체: 宋德福 || 1985년 11월 ~ 1993년 05월 || || [[리커창]] || 중국어 정체: 李克强 || 1993년 05월 ~ 1998년 06월 || || 저우창 || 중국어 정체: 周强 || 1998년 06월 ~ 2006년 11월 || || [[후춘화]] || 중국어 간체: 胡春华 || 2006년 11월 ~ 2008년 05월 || || 루하오 || 중국어 간체: 陆昊 || 2008년 05월 ~ 2013년 3월 || || [[친이즈]] || 중국어 정체: 秦宜智 || 2013년 3월~ || 中国共产主义青年团ㆍ中國共產主義青年團, ([[영어]])Communist Youth League of China; Communist Youth League. 그러나 이는 공식적 조직으로서의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을 말하는 것이고, 중국공산당 내 분파를 가리킬 때는 단파(团派)라고 한다. 영어로는 음을 그대로 읽은 Tuanpai 혹은 Youth League Faction. [[중국공산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예비당원 제도로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부터 경력을 쌓아서 당관료로 진입한 사람들이다. 주로 각급 학교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좋고 당성[*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특정 당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이 건전한 모범생들을 대상으로 공청단에 입단시키는데, 이런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공산당으로 진입해 활동하면서 거대 파벌을 이루는 것이다. 해당 파벌의 수장은 전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국가주석]]인 [[후진타오]]. '중국공산당에서 젊은이들 중에서 명석한 사람들을 모아서 지도하며 차세대 지도자로 키워나가는 곳'이라고 하나, 실제 공청단은 [[문화대혁명]]을 겪은 젊은 공산당원 엘리트들의 일부로서, 해외 유학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힌 사람들이 많이 포진한다. 당시 해외 유학을 가려면 [[이공계]]가 더 수월했는지 '''공청단 핵심인원 대부분이 공학도나 과학도''' 출신이다. 사실 '''[[문화대혁명]] 당시 [[인문학]]ㆍ[[사회과학]] 분야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뭐든지 [[마오쩌둥|마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주석]] 찬양만 했으니 이공계와 다르게 발달할 틈이 없었다. 개방 후에도 중국은 인문학ㆍ사회과학 수준은 이때의 여파로 인해 얕은 편이다. 특히나 세계적인 수준인 이공계에 비하면 학문이 발달할 기반조차 없다고 보는게 옳다. 이들은 외국에서 견문을 넓힌 탓인지 외국 문물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으며 중국 개혁의 필요성을 실감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이공계와 해외 유학 경험을 통해 외교에도 활약했으며, 1990년대부터 중국의 개방이 시작되면서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공청단의 수장이었던 [[후진타오]]가 중국의 지도자가 되면서 당 내에서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 내 파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세력이다. 3대 파벌 중에 들어가기 쉬운 곳이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이공계 출신 해외 유학파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3대 파벌 중 유일하게 당내 정식 단체이다. 따라서 공청단과 [[태자당]]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양다리는 보통 파벌싸움 때는 [[태자당]] 편을 들며, 공청단 소속 이유는 순전히 당내 활동 때문일 경우가 많다. 중국 내외의 분석가들은 [[시진핑]] 이후 차기 대권 계승자로 공청단의 [[후춘화]]를 꼽고 있다. [[태자당]]이었던 [[시진핑]] 이후는 공청단이 몫인데, 그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후춘화]]라는 것.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26/0200000000AKR20160126058200009.HTML|기사]] [[후진타오]] 역시 [[후춘화]]를 [[시진핑]]의 다음 후계자로 밀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6&aid=0001190189|해당 기사]] 이 때문에 종신집권을 추진하는 [[시진핑]]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시진핑의 정적 숙청이 지금보다도 더욱 극에 달한다면 시진핑의 숙청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2022년]] [[10월 23일]],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하고 가장 중요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전부 자신의 가신그룹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우는데 성공하여 크게 몰락하게 되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33110?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